네이션스리그: 축구로 문화를 뜯어보다

네이션스리그: 축구로 문화를 뜯어보다

UEFA가 올해부터 새로 만든 네이션스 리그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해당 리그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이 많았지만 4강에 오른 팀들의 실력과 그 이면에 대해 제대로 살펴본 적은 없는 이 시점에서 포르투갈, 스위스, 영국, 네덜란드 이 네 국가가 갖고 있는 특별하고 흥미로운 성격을 알아보고자 한다.


PORTUGAL

포르투갈의 축구는 19세기 말 영국에서 축구라는 스포츠가 넘어오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두 나라 간의 국제적 갈등이 심화되자 포르투갈은 영국에서 온 축구라는 스포츠마저 금지하려고 했다. 한번 축구의 매력에 빠진 포르투갈 국민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더욱이 그 매력에 심취해갔다. 이런 국민들의 사랑과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한 채 포르투갈의 20세기 축구는 그 어떤 화룡 정점도 찍지 못하고 흘러갔다.

거기에 실망하지 않으려 오랜 시간에 걸쳐 성향이 바뀌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포르투갈 팬들 중에는 그래서 “현실주의자” 그룹이라고 칭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포르투갈 팬들은 자국팀이 압도하지 못할 땐 최악을 예상하며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그런 포르투갈에게도 항상 나쁜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에우제비오, 피구, 호날두 등 세대를 아우르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슈퍼스타가 이따금씩, 하지만 끊이지 않고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런 선수들로 하여금 팀이 다시 살아날 기미가 보일 때 포르투갈 팬들은 어김없이 희망적이고 넘치는 에너지로 자국 팀을 응원하고는 했다. 그리고 이런 팬들의 성향은 지역적인 바운더리를 넘어 전세계로 뻗어나간다.

미국 보스턴의 시내는 포르투갈 축구팬들에게 유명하다. 2014년 열린 포르투갈 페스티벌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데 당시 그 다음날 미국과 월드컵 예선전이 예정되어 있어 이 날 포르투갈 팬들은 이 곳에 모여 자국팀의 승리를 기원하고 축하하였다. 또한 벤피카, 포르투, 스포르팅과 같은 팀들의 서포터즈 연합이 있어 미국 거주 포르투갈 국민들을 하나로 이어주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보스턴과 같이 파리, 시드니, 토론토 등 전세계 많은 도시에서 포르투갈 국민들은 그들의 끈끈함과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SWITZERLAND

아쉽게 포르투갈에 패하긴 했지만 많은 축구팬들은 스위스를 이번 네이션스 리그의 ‘괴짜’라고 평했다. 스위스 축구팀에는 미안한 얘기지만 그들이 많은 강팀과 맞서 승리를 쟁취했다고는 해도 그 어떤 우승도 차지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와 같이 그들이 다른 참가국들에 비해 확연히 도드라지는 사실은 그들의 축구 실력 때문이 아닌 문화적 차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스위스의 전반적인 문화를 한 단어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이는 다양성일 것이다. 유럽의 중심에 있는 이 국가는 문화 교류에 허브에 위치한다. 따라서 오스트리아,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의 문화가 자연적으로 스며들어 단일민족이 갖고 있는 민족문화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축구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많은 유럽 국가들이 축구라는 한 종목에 그들의 모든 이목을 집중시키는 반면, 스위스는 많은 스포츠 종목에 균등하게 관심을 보인다. 이와 같은 점이 많은 축구팬들로 하여금 스위스가 다른 축구 강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스위스가 그들의 입장을 대변할 어떤 우승컵도 뒤춤에 감추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약팀이라고 할 수 있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런 증명 없이 스위스를 무시하는 다른 국가들이야 말로 스위스가 여기까지 오는데 좋은 먹이감이 되어준 꼴이다. 스위스와 스위스의 축구팬들은 이런 방심을 잘 이용하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들보다 적은 예산과 관심으로도 충분히 FIFA 랭킹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스위스 국가대표팀은 외부의 평가보다는 내부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커가고 있고 이는 내성적이며 자주적인 스위스 국가관과도 매우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NETHERLANDS

네덜란드에서 축구란 많은 것을 의미한다. 네달란드 축구팀과 선수들을 보면 축구는 전통적인 의미로 우아함을 표현하는 예술의 한 종류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포메이션에 의존한 기존 축구에서 선수의 다재 다능함을 극대화시키는 토탈싸커의 탄생은 한 선수가 그라운드 위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는 이상적인 비전을 그린 전략적 참신함이었다. 네덜란드는 이렇게 선수의 재능을 발굴하고 표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요한 크루이프와 마르코 반 바스텐과 같은 예술의 경지에 오른 선수들을 배출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술에는 항상 아름다움만이 존재하진 않는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네덜란드의 우아함은 사라졌고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난잡하고 거친 예술혼이 깃들게 됐다. 시대를 막론하고 네덜란드 축구에는 항상 어느 정도의 혼돈이 있었다. 어떤 스타일의 플레이를 구사했던지 간에 그들의 축구에는 오렌지 열정이 넘쳐흘렀다. 오렌지 색으로 바다와 같은 물결을 이루는 네덜란드의 팬들은 언제 어디서나 네덜란드를 응원할 준비가 되어있으며 어느 시대에 있던 네덜란드 축구는 예술을 대변할 것이다.

네덜란드 축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한가지가 있다면 바로 비즈니스이다. 네덜란드는 축구 경기 외적으로도 많은 경로로 비즈니스를 일으키는데 크루이프와 반 바스텐 등 많은 전설적인 선수들도 이윤을 극대화하는 비즈니스 중심에 있었다. 자국 및 해외 유망주들을 길러내는 유명 축구 아카데미가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며 두둑한 이적료를 챙기며 잘 키운 선수들을 해외로 내보내기도 한다. 에베레디지에의 팀들은 유럽의 더 큰 시장의 팀들과 같이 자본을 굴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미래 슈퍼스타들의 요람이 되기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커리어를 갓 시작하는 어린 유망주들의 문지기 역할을 하며 그들이 날 준비가 되면 높이 날아가게 놓아주는 역할을 네덜란드 축구만큼 잘 할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ENGLAND

잉글랜드 축구에서 가끔씩 일어나는 사건들은 분명 걱정거리긴 하지만 이 외에도 항상 잡음이 끊이지 않는 나라에서 잉글랜드의 축구는 견고함을 잃지 않고 있다. 이들은 축구를 더 안전하고 따분(?)하게 만들고자 했던 마가렛 대처가 발의한 법안도 사실상 막아낸 사람들이다. 선택지에 포기란 없었기에 될 때까지 밀어붙인 이들이다. 고집불통의 블루컬러 노동자의 오뚜기 같은 굳건함은 이 국가의 축구팬들 뿐 아니라 이 국가의 국민성을 보여준다.

영국에서 축구는 “home”으로 표현된다. 많은 이들에게 잉글랜드는 축구계의 중심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들이 모여 가장 뛰어난 팀들이 경합하는 가장 우수한 리그의 본고장 아닌가. 하지만 꼭 최상위가 아니더라도 영국의 축구팀들은 항상 자신들이 가장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증명해내는 부분이 있는 듯하다.

국제무대에서의 잉글랜드 축구를 설명할 때 “football is coming home”이라는 끊임없이 외치는 구호만큼 더 좋은 표현은 없는 것 같다. 그저 양손에 국기를 들고 얼굴에는 국기를 그린 사람들만 한번 보면 잉글랜드 축구팬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딱히 보여준게 없는 팀이지만 잉글랜드는 아직도 자신들이 세계 축구를 호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네덜란드와 브라질이라는 더 가까운 곳에 라이벌을 두고 있는 독일과 아르헨티나와 아직도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잉글랜드를 보고 있자면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을 평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잉글랜드는 유나이티드 킹덤 (United Kingdom)의 일부가 아닌, 단 하나의 왕국 (the kingdom)이다.

By 박세호, GOAL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