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THE GOAL] 리버풀 레전드 지브릴 시세

[LIVE THE GOAL] 리버풀 레전드 지브릴 시세






Live the Goal. 흘러가는 그 모든 인생들에게는 각자의 목적지가 있다. 바다를 향해 흐르는 시냇물처럼. 우리는 그 목적지를 “goal”이라 부른다.

누가 시켰든, 스스로 원했든, 본능적이든, 운명적이든, 우리는 오늘도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어떤 이는 걷던 길을 포기하고 다른 방향으로 걷게 될지 모르고, 또 다른 이는 목적지를 눈 앞에 두고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며 숨을 고를 수 도 있겠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어느 방향인지 모르겠다고 징징대는 사람조차도 그 순간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을지 모른다. (하이데거처럼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최소한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창 밖 넘어 모두가 자신이 정한 목표를 향해 부드럽게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순간, 그렇게 부드럽게 흘러가는 인생은 동화 속에만 존재한다는 현실을 눈 앞의 거울을 보며 깨닫는다. 우리는 지금 숨 가쁘게 오르막길을 오르는 중일지도, 오른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그렇게 오른 오르막길 동안 생긴 근육통에 괴로워하며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오늘 겪는 이 치열함은, 결국 당신이 인생을 살면서 쌓아온 당신 삶의 무게와 당신이 걷는 길의 경사면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중력 질량(gravitational mass) 같은 것일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적어도 지구인이라면 당신에게도 그 중력은 작용할 것이고, 당신의 금수저 친구에게도, 당신 여자친구에게 은밀하게 DM을 보낸 치사한 그 자식에게도 마찬가지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니 안심하자, 이 지구에서 나 혼자 힘든 건 아니다. 하지만 또 너무 안심하진 말자, 이 지구에서 나 혼자 열심히 사는 것 또한 아니다. 나만큼 저들의 인생도 쉽진 않고 내가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오늘 하루가 저들에게도 역시나 치열한 전쟁터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우리는 모두를 향한 respect가 필요하다.

자신의 꿈을 거의 다 이룬 것처럼 보이던 한 축구선수가 있었다. 피치를 질주하던 황금의 수염. 패션의 나라 프랑스를 대표하듯 당대 가장 패셔너블 했던 축구스타. 지브릴 시세. 2000년대 중반을 기억하는 축구 팬들에게 그의 이름은 결코 낯 설지 않다. 2000년대 초반 프랑스 아트사커의 가장 젊은 유망주. 리버풀FC가 이스탄불에서 일으킨 기적의 주역. 그러나 충격적이었던 부상 소식과 함께 그는 축구 팬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졌다. 2개 리그에서 4번의 득점왕, 그리고 3개 리그에서 4번의 방출. 마치 롤러코스터와 같았던 드라마틱한 그의 축구 인생은 지금 어떤 골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까?

그가 걸었던 내리막길의 고통을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가 험난한 오르막길과 정상, 괴로운 내리막길을 이미 한 번 지나 왔다는 것이고, 우리가 감히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그의 인생이 또 다른 목적지를 향해 또 다시 힘차게 흘러가고 있을 거라는 것이다. 결국 그렇게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Live the Goal.

GOALSTUDIO는 영국 사우스런던의 어느 클럽에서 지브릴 시세와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축구선수로서, 가장 성취감을 느꼈던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저를 응원해주던 팬이죠. 저는 항상 축구, 패션 혹은 제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제 자신을 표현해 왔어요. 경기장내의 팬들이 저를 위해 질러주던 그 환호성이 지금까지도 제게 가장 가슴 뛰는 순간인 것 같아요. 스트라이커로서, 팬들 과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해요. 스트라이커는 골을 넣고, 골을 넣을 때면 관중석을 향해 뛰어가서 함께 축하하기 때문이죠. 반대로, 그들은 제가 부진하는 경기 조차도 응원하면서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죠. 이러한 소통을 통해 관중석의 팬들과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저의 20년 축구 인생 동안, 팬들이 제게 항상 힘을 불어넣어 줬기에, 팬들과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어요. 수비를 하기 위해 런-백 할 때, 추가시간 극장골을 넣기 위해 피곤한 다리를 끌고 뛰어올라 갈 때, 팬들의 응원 덕분에 경기에서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었죠. 제 커리어를 통틀어서 팬들과의 관계와 그것을 유지하는 게 가장 최우선적인 목표였어요. 경기가 끝난 후 그들과 함께 승리를 자축하고 그들에게 제 유니폼을 벗어 던져 주는게 제겐 너무나도 큰 행복이었죠.

Q: 팬들과 연결되었다는 느낌은 어떤 느낌이죠?

팬들이 제 이름을 부르고, 제 응원가를 불러줄 때는 정말이지 어떤 단어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에요. 그냥 너무 놀랍죠. 이런 놀라운 팬들과 선수의 관계는 아무나 느껴볼 수 없는 정말 특별한 경험인 것 같아요. 제가 골을 넣을 때마다 관중들을 바라볼 때 면, 그들이 주는 사랑과 함께 엄청난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이 들어요. 당연히 축구선수로서 골을 넣을 때 드는 감정은 특별하지만, 저 혼자만의 행복은 그리 길게 유지되지 않아요. 정말 오래가고 기쁨의 깊이가 다른 순간은 팬들과 함께 축하하고 즐거워하던 그런 순간들이죠. 특히 그런 순간들이 극장골 같은 순간이라면 더욱 더 특별해지고, 그저 어린아이처럼 팬들에게 달려들어 함께 뛰어 놀고 축하하고 싶어요. 저 덕분에 이 사람들이 한 주를 행복하게 보낼 생각을 하면 정말 뿌듯하고 제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저를 포함한 대다수의 축구선수들은 가끔 축구경기의 결과나 저희의 경기력이 팬들의 일상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잊을 때가 있어요. 끔찍한 패배를 당한 주말 이후 그 다음주 내내 우리 팬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상실감과 함께 패배한 경기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야 하죠. 이러한 영향력을 알기에 모든 경기,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만 했습니다.



Q: 콥들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콥: 리버풀 팬들을 일컫는 용어)

전 콥들과의 관계를 항상 감사히 여겨요. 전 항상 그들을 위해 뛰는 것을 꿈꿔 왔죠. 콥은 전설적인 집단이고, 안필드 스타디움은 세계에서 가장 열정적인 구장 중 하나죠. 리버풀 선수로서 첫 시작은 환상적이었어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끔찍한 부상을 당하고 말았어요. 피나는 노력 끝에 경기장에 돌아왔지만. 정말 저를 끝까지 믿어주고 응원해준 팬들이 아니었다면, 더 오래 걸렸거나 아니면 아예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어렸을 적부터 프로 선수로서 단 한 골을 넣는 것이 제 꿈이었어요. 물론 한 골 이상의 득점을 했고, 많은우승컵도 들어올릴 수 있었어요. 특히나 빅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컵)를 들어올렸던 건 제 어릴 적 상상 그 이상의 경험이었습니다. 빅이어를 제 손에 들고 길거리의 수 많은 관중들과 함께 축하할 때,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저를 응원해준 팬들과 함께 그 순간을 공유하는 거였죠. 전 정말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그 트로피를 만져볼 수 있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었죠. 그래서 전 그날 하루동안 이 위대한 팬들과 최대한 많은 소통을 하겠다는 결심을 했고, 결과적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 퍼레이드가 끝날 때쯤 전 거의 벌거벗고 있었어요. 제가 몸에 걸치고 있던 모든 걸 관중을 향해 던져줬거든요. 정말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Q: 원정 팬들은 어떤가요?

저는 원정 팬들을 도발하고 놀리는 것을 별로 즐기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한번은 제가 블랙번 로버스 상대로 경기할 때 그들을 놀린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제가 이전에 블랙번 로버스와의 경기에서 끔찍한 부상을 당한 뒤 복귀해서 치른 경기였어요. 물론 경기의 일부지만, 로버스 팬들은 제 부상에 대해 비웃는 노래를 부르며 저를 조롱했어요. 블랙번 로버스 팬들에게는 불운하게도 그 경기에서 제가 골을 넣었고, 전 제가 받은 걸 그대로 돌려줘야 했죠. 정말 그냥 너무나 재밌는 순간이었어요. 절대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은 행동이 아니라 그저 블랙번 로저스 팬들과 저 사이에서 일어난 재밌는 순간 중 하나 일 뿐이에요.

Q: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본인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국가대표에 차출된다는 건 정말 차원이 다른 기분이죠. 국가를 대표한다는 건, 가족, 친구, 아이들, 그리고 제 자신을 대표한다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티에리 앙리나 지네딘 지단 같은 선수들과 함께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제겐 꿈만 같았어요. 그 뿐만이 아니에요. 제 눈앞에는 8만명의 구름관중이 있고, TV로 경기를 시청하는 팬들은 훨씬 더 많죠. 그들을 위해서 모든 걸 쏟아 부어야 해요. 몸을 바치고 영혼을 바쳐가며 나라를 위해 뛰어야 하죠. 전 41경기동안 프랑스를 대표할 수 있었고, 제 인생에서 너무나 큰 행운이었어요. 전 프랑스를 위해 정말 제 모든 걸 쏟아 부었어요. 비록 프랑스를 위해서 뛰다 다리가 또 한번 부러지는 불운을 겪었을지라도, 이 위대한 팀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한 제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Q: 프랑스 국가대표로서 득점한 첫 골은 어땠나요?

아마 A매치 두번째 혹은 세번째 경기였던 것 같아요. 사이프러스 원정 경기였는데, 원정 경기였기 때문에제가 사랑하는 팬들과 함께 축하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국가를 위해서 골을 넣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어요. 너무나도 중요한 유로 예선 경기였으니까요. 제가 속한 클럽팀을 위해서 넣은 골 보다 좋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분명 다른 기분이었어요. 너무도 자랑스러운 순간이었고, 아직도 어제 같이 생생해요.



Q: 인생 첫 골을 기록했을 때는 기분이 어땠나요?

처음으로 프로팀의 관중들 앞에서 프로팀의 유니폼을 입고 골을 넣었을 땐 마치 제가 월드컵에서 득점한 것 같았어요. 제 유년기시절 내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골을 넣고 이 세상에 제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 꿈이었어요. 비록 제가 어렸을지라도, 전 스트라이커라는 포지션에 진지하게 임했어요. 남들이 저에 대해 왈가왈부해도 그것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만약 제가 경기에서 부진했다면, 그들이 저를 깎아내리는 것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어요. 물론 그게 제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진 않았고요. 제가 할 일은 명확했어요. 다음 경기에 골을 넣어야 했고, 저는 그것을 실천해냈죠. 제 생각에는 골키퍼와 스트라이커는 상당히 비슷한 부분들이 많아요. 경기내에서의 역할은 정반대지만, 같은 정신력을 가지고 경기에 임해야 하죠. 그런 자세와 정신력으로 인해 제가 스트라이커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축구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 있나요?

제게 가장 좋았던 기억은 유년기 시절인 것 같아요. 공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했을 때, 경기당 10골에서 15골씩 집어넣었거든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저희는 너무 재밌게 공을 찼어요. 9살의 어린 소년들이 그 누구보다 경기에 진지하게 임했고, 매일 저녁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집에 갔던 순간들이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커리어 중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을 골라야 한다면, 당연히 제가 승부차기 키커로 나섰던, 이스탄불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AC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될 것 같네요. 그 순간으로부터 5개월 전만 해도 전 겨우 걷고 있었어요. 시즌 초반 당했던 부상이었기 때문에, 전 시즌이 끝나기 전에 복귀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어요. 그리고 승부차기 직전, 라파 베니테즈 감독이 제게 와서 “지브릴, 너가 찼으면 좋겠어.” 라고 말했을 때, 전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알겠다고 했고, 득점에 성공했어요. 정말이지 너무 행복해서 감당이 안되는 순간이었어요. 리버풀이 들어올릴 수 있는 가장 큰 트로피를 들어올리는데 이바지했을 뿐 아니라, 말도 안되는 역전승과 저를 부상에서 돌아올 수 있도록 힘을 주고 도와준 가족, 친구들, 그리고 무엇보다 팬들을 기쁘게 했기 때문이죠. 너무 감사한 순간이었어요.

Q: 관중들의 환호를 세 단어로 표현한다면?

힘, 끈기, 그리고 사랑



Q: 아들들도 축구를 하나요?

제 아들들 역시 축구를 사랑하고 축구를 해요. 아이들이 제 현역 시절, A 매치와 제 소속팀 경기들을 종종 보러왔어요. 그리고 물론 아빠처럼 되고 싶다고 해요. 그럴 때 마다 전 항상 결코 쉬운 길은 아닐 거라고 말해주죠. 아마 피나는 노력과 집중력이 필요할겁니다.

Q: 아들들이 넣는 골을 바라보는 기분은 어떤가요?

와.. 정말 훨씬 더 강력합니다. 너무나 큰 행복이에요. 제 아들들은 정말 제 핏줄이잖아요. 제가 골을 넣는다는 사실보다 카시우스와 프린스가 골을 넣는 걸 봤을 때 기분이 훨씬 좋아요.

Q: 아들들이 당신의 발자취를 따라가길 원하나요?

아니요. 제 아들들이 축구를 할 때에도, 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려고 노력해요. 심판이나 아이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소리지르는 그런 유형의 부모님이 되고 싶지 않아요. 전 그저 게임이 끝난 뒤 조용히 제가 보고 느낀 점들, 그리고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했으면 더 좋았을지 이야기해주곤 하죠. 절대 축구를 하라고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이 하고싶으면 하는거고 하기 싫으면 안하는게 맞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선택이지 절대 제 선택이 되면 안되니까요. 현재로서는 아이들이 축구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프로선수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에, 아낌없이 조언해주고 있는거예요. 어느날 갑자기 카시우스나 프린스가 제게 와서 “아빠 저 이제 테니스 선수 할래요. 축구 그만하고 싶어요.” 라고 말한다고 하더라도, 괜찮아요. 어떠한 일이든, 제 아들들이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맹세코 제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서포트를 줄 수 있어요.

Q: 이제 축구선수로서의 경력이 끝났는데, 새로운 GOAL이 있나요?

제 인생에서의 축구는 이제 끝났죠. 제게 새로운 열정은 음악이고, 제 골은 DJ로서 이름을 남기는거예요. 아직까지는 정말 즐거운 여정이네요. 엄청난 페스티벌과 클럽에서 음악을 틀기도 했고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게 해주는데 있어서는 축구만큼 보람찬 것 같아요.



Q: 축구팬 들과 클럽 관객들과의 공통점이나 차이점이 있을까요?

상당히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어요. 둘 다 저의 퍼포먼스를 보고 제게 그들의 에너지를 다시 전달해주거든요. 하지만 굳이 다른 점을 말하자면, 축구의 경우에는 저 혼자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11명이 플레이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제가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더라도 10명의 팀 동료들이 저를 백업해주지만, DJ로서는 매일 좋은 디제잉을 선보여야 해요. 저 혼자 모든 관객들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죠. 단지 DJ 부스 위에서 뿐 만이 아니라, 스테이지 아래에서의 준비 과정도 굉장히 중요해요. 저는 다양한 음악을 들으면서 단 하룻밤의 완벽한 음악 셀렉을 위해 남은 일주일을 보내요.



Q: DJ를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음.. 제생각에는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제가 무대 위 DJ 부스 앞에 있을 때면, 관객과 저는 하나가 되어 몇 시간 동안 같이 재미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저는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사랑을 주고, 관객들은 제 노래를 즐기면서 저한테 다시금 그들의 에너지로 사랑을 보답해주는 관계가 너무 쿨한 것 같아요. 몇몇 관객들은 절 알아보지 못할 것이고, 또 더 어린 친구들은 아예 제가 축구선수였던지도 모르겠지만 아무 상관없어요. 물론 금방 저를 다시 잊겠지만 저와 함께 신나게 뛰어 놀았던 좋은 추억으로 저를 그들의 인생에서 잠시나마 기억해줄테니까요. 그거면 제 소명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