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토 가우초

레나토 가우초



1985년의 발렌타인 데이, 헤나투 가우초는 브라질 국가대표팀 소집된 후 훈련장에서 Globo TV와 함께 진행하는 인터뷰에 앞서 꽃다발을 들고 나타났다. “제 사랑에게 이 꽃을 전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꽃 한송이를 카메라를 향해 던졌다. 다시 한번 말을 이어가며, “이 한송이는 또 나의 또 다른 사랑 칼라 에게 전하고 싶고, 이건 파트리샤, 질다, 모니카에게도 똑같이 전하고 싶어요. 당신들을 절대 잊을 수 없어요.”

80년대 와 90년대를 아우르는 축구계의 섹스 심볼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던 그는, 후에 이 인터뷰에 대해 해명했다. 그가 불러 줬던 모든 이름들은 그의 현재의 혹은 과거의 여자친구 가 아닌, 바로 국가대표 팀 동료들의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역시 헤나투 가우초다운 모습이다.



1000개 이상의 득점을 했다는 펠레의 말에 헤나투는 “하나라도 나와 잠자리를 함께한 모든 여성을 위해” 라고 답했다. 화려한 언변을 가진 헤나투는 남쪽의 큰 강인 과포레강 근처의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태어났는데, 이 곳은 브라질 유명 축구 클럽인 그레미우의 연고지이기도 하다. 현재 56세의 축구 코치이기도 한 헤나투는, 클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선수로서 어린 선수들의 우상이기도 하다. 그의 업적은 2017년도에 완성되었는데, 바로 남미 최고의 대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우승 시킨 것이다. 선수 시절 우승을 시킨 것도 모자라, 감독의 위치에서도 팀을 최정상의 자리에 올려 놓은 것이다. 이는 브라질 출신 중 최초의 업적으로 기억된다.



그가 일궈낸 전설적인 업적 중 첫 번째는 1983년 그레미우의 슈퍼스타로서 클럽 월드컵에서 함부르크 SV를 상대로 2:1로 승리한 후 세계 챔피언이 된 일이다. 이 경기에서 헤나투는 2골을 기록했다. 헤나투는 그레미우와 변치 않는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꽤나 많은 클럽들과 관계를 맺었다. 그의 대부분의 선수생활을 리오 데 자네이루에서 보냈다. 플라멩구 소속으로 4년동안 뛰었고, 플루미넨세와 보타포고에서도 선수 생활을 지냈다. 리오 데 자네이루 특유의 발음을 가지고 있는 헤나투는 다른 축구선수들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차도 좋아하지만, 그보다 더 깊게 중독되어 있는 취미 활동이 있다. 해변가에서 즐길 수 있는 풋-발리를 가장 좋아한다. 풋-발리를 빼놓고 서는 그의 인생을 논할 수 없다고 한다.

2016년에 그레미우의 감독을 맡게 되기 전, 그는 안식년을 가졌다. 당시 많은 브라질 출신의 코치들이 유럽에 가서 조세 무리뉴, 펩 과르디올라, 그리고 지네딘 지단 같은 감독들에게 연수를 받곤 했는데, 헤나투는 유럽 연수 보다는 브라질의 해변가를 찾았다. “배워야 하고 공부해야 하는 사람들은 유럽을 가야죠. 하지만 배우고 공부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그냥 해변가나 가서 즐겨야죠. 축구는 자전거를 타는 것 과 같아요. 아는 사람들은 그냥 아는거죠.”



헤나투는 경기장 안팎에서의 자신의 업적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 심지어 2017년 클럽 월드컵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하기 앞서,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를 본인과 비교했다. “제가 선수 시절 당시 호날두 보다 뛰어났다는 사실에 확신이 듭니다. 전 호날두가 3~4달 동안 급여가 밀려가며 뛰었던 제 클럽들에서 뛰면서 우승하는 것을 보고 싶네요.”



물론 헤나투도 유럽진출에 성공했던 시절이 있다. 1988년 AS로마에 입단해서 딱 1년이라는 시간동안 활약했다. 국가대표로서는, 1986년 브라질의 월드컵 스쿼드에 선택받지 못했는데, 이는 그 당시 감독이었던 텔레 산타나 감독이 그가 밤에 몰래 나가서 놀다 들어온 것을 걸렸기 때문이다. 4년후에,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에게 패해 브라질은 탈락하고 만다. 하지만 헤나투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른 탈락은 해변가에서의 시간을 늘려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