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몰락 -2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몰락 -2부



요즘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영어로 “over-correcting(과잉 교정)”이라는 표현은 막 이별한 사람과 정반대인 사람을 찾아 만나는 습관을 뜻한다.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몸소 이 "과잉 교정"이 뭔지 보여주었다. 분데스리가, 라리가, 에레데비지에, 챔피언스리그를 평정한 루이스 판할 감독은 2014년 5월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의 후계자로 등장했다. 바닥에서부터 시작하여 산전수전 겪으며 맨유 감독의 위치까지 올랐던 영국인 감독을 엘리트코스를 밞은 완성형 ‘위너’로 대체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도 그가 퍼거슨 경의 명성에는 범접할 수 없었겠지만 최소한 판할에게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직을 맡을 만한 이력이 있었다. 판할의 등장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라고 생각한 것은 큰 오산이었다.

이와 같은 실수의 배경에는 2002년의 해프닝이 있었다. 당시 퍼거슨 경은 은퇴를 고민하고 있었고 판할은 네덜란드 대표팀의 감독이었다. 판할을 2014년 맨유의 감독으로 선임한 것은 10년도 더 된 해프닝의 재탕일 뿐이었으며 한가지 의문마저 들게 했다.

10년도 더 전에 고민했던 것을 다시 꺼내 기어코 행동으로 옮긴 것이 과연 좋은 생각이었을까?

어찌됐든 판할은 이 질문에 어떻게 대응할지 알고 있었다. 감독직에 오른 이 후 두 시즌동안 판할은 매 시즌 1억 파운드 이상을 썼다. 루크 쇼 및 앙토니 마샬 등 몇몇 선수들은 맨유 고정이 되었지만 판할이 새로 영입한 대부분의 선수들은 제 값을 해주지 못했다.



꽤나 이름있는 선수들이었지만 그들은 실력을 만개하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아르헨티나 스타인 디마리아는 EPL 이적료를 갱신하며 맨유 선수가 됐지만 폼이 충분히 올라오지 못한 이유로 포지션 경쟁에서 밀리며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해야 했으며 콜롬비아의 골잡이 팔카오는 무릎 부상으로 반년동안 벤치에 머물러야 했다. 그는 몇 경기 밖에 선발 출장하지 못하고 맨유 유스팀으로 내려보내져 그들과 훈련하게 됐다. 두 선수 모두 판할과 한시즌을 보내고 프랑스로 이적하게 됐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서 기량을 다시 만개했다.



최소한 그들은 다른데서라도 다시 제 기량을 되찾았다. 판할은 가성비를 주장하며 3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한 빅토르 발데스 및 월드컵 우승경력이 있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와 같은 노장 선수들도 영입했는데 그들 역시 팀에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한 채 유스팀으로 내려가게 되었고 다시는 예전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더 놀라운 사실은 위에 언급한 네 명의 선수로는 판할 감독이 쓴 금액의 반도 못 채운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에레라, 데파이, 슈네이더린 등과 같이 조금 덜 유명한 선수들로 채워졌지만 그들 역시 큰 감흥을 주지 못하였다.

이적만이 판할이 맨체스터 제국의 몰락에 이바지한 것은 아니었다. 항상 “3개년 계획”을 성경 마냥 강조하던 그는 자신이 내뱉은 말과는 사뭇 다르게 그 계획을 완성하기까지의 인내심을 보여주는데 실패했다. 완벽주의자 성향이 짙은 그는 조금이라도 계획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자신의 신념을 완강히 지키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동시에 멀리 보지 못하는 편협함은 치명적이었을 수 있었다.



판할과 선수들의 관계가 그러했다. 히바우두, 리베리, 루카 토니 등과 같은 스타플레이어들과의 관계는 우리가 봤을 때 그리 이상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그들은 판할의 시스템에 바로 적응하지 못한 판할이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선수들이었다.

이와 같은 판할의 성격이 맨유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 것은 래시포드를 통해서였다. 1군 선수들의 합이 잘 맞지 않자 래시포드가 기회를 얻었다. 그의 퍼포먼스는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그로 인해 판할의 신뢰를 얻었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팀이 계속 부진하자 판할 감독은 래시포드의 경험 부족을 꼬집으며 팀의 부진을 그의 탓으로 돌렸다.


정작 래시포드 본인은 판할 감독의 이런 비판에 대해 크게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다른 많은 선수들이 폭발하게 된 도화선이 되었다. 선수들은 그의 선수영입과 전술을 탓했고 결국 판할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의 감독생활을 마무리하게 됐다.

선수들을 부진에 익숙하게 하고 슬럼프를 정착시킨 것이 판할의 패인이었다. 모예스 시절, 부진이나 패배는 이 팀에 비교적 새로운 경험이자 개념이었다. 하지만 판할이 오고나서는 이를 당연시하게 됐고 승리에 더 익숙했던 오랜 팬들과 운영진들은 이와 같은 현상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판할의‘3개년 계획’이 끝날 때 까지 기다려줄 수도 있었겠지만 계속되는 패배와 판할의 성격은 그들의 결정을 더 빠르게 앞당겼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직을 맡았던 판할의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 끝이 난다. 훨씬 더 오래 전 아약스 감독 시절 그가 남긴 마지막 오점은 한 선수를 성급히 아약스에서 이적시킨 것이다. 그 선수가 자기멋대로라는 점은 맞았을지 몰라도 그가 슈퍼스타 자질이 없다고 한 것은 명백히 틀렸기 때문이다.그로부터 수년 후 2016년 무리뉴가 판할을 대체하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새로운 감독이 되고 난 후 가장 좋은 영입이라고 평가받는 선수가 판할이 아약스 시절 이적시킨 바로 그 선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이기 때문이다.

By Seho Park of GOALSTUDIO